4차 산업혁명과 지식재산 : 매일경제 기고 (2017년 10월 16일 월요일)

4차 산업혁명과 지식재산

 

성윤모 특허청장

 

톰 크루즈 주연의 ‘파 앤드 어웨이'(1992)라는 영화는 아일랜드 출신의 가난한 청년이 미국으로 떠나 땅을 쟁취하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압권은 미국 서부지역 불모지에 먼저 깃발을 꽂기 위해 마차와 말을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다. 필자는 당시 선착순 경쟁을 통해 먼저 깃발을 꽂는이가 땅을 쟁취했던 상황이 지식재산 제도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재산 제도가 경제적 벌판에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라는 깃발을 먼저 꽂는 사람에게 일정기간 독점적인 사용권을 보장해 산업혁신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깃발 꽂기는 미국 서부 개척 시대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의 신기술이 등장해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 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상상과 아이디어가 비즈니스 원천이 되는 소프트 파워 시대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신사업 모델을 지식재산으로 강하고 신속하게 보호하는 국가에서 혁신이 창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버, 에어비앤비는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기술만으로 차량·숙박 공유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해 스타트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이러한 혁신 기업들이 지색재산을 강하게 보호하는 미국에서 많이 배출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필자는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지식재산으로 제대로 보호해야 우리 중소·벤처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특허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액이 GDP 차이를 고려해도 미국의 6분의 1에 불과해 특허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아이디어·기술 탈취로 인한 중소기업 피해가 증가하고 있고, 지식재산 보호 수준도 전반적으로 낮은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혁신 의욕을 저하시켜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악순환을 야기하고 있다. 새로운 땅에 먼저 깃발을 꽂아도 제대로 된 인센티브가 없다면 도전 정신은 퇴색되기 마련이다.
지난 9월 특허청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기술·아이디어 배끼기를 근절해 혁신을 촉진하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중소·벤처기업 혁신 성장을 위한 지식재산 보호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식재산 보호 제도와 집행을 대폭 강화해 중소·벤처기업의 기술혁신과 성장을 이끌어 내는 선순환적 지식재산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우선, 우월적 지위자 등이 악의적으로 특허를 침해한 경우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액을 확대하는 징벌배상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중소·벤처기업은 대기업이 특허를 침해해도 소송비를 감당하기 어렵고, 소송 시의 손해배상액도 적어 피해 구제가 미흡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대기업이 중소·벤처기업의 특허를 쉽게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징벌배상 제도가 도입되면 중소·벤처기업이 피해를 보상받는 수준이 높아지고, 대기업의 특허 침해를 억제하는 예방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사업제안 등 다양한 거래 관계에서 발생하는 중소·벤처기업 아이디어 탈취 행위와 프랜차이즈 등의 사업 외관을 모방하는 무임승차 행위에 제재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부정경쟁방지법상의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해 금지청구, 손해배상 등의 민사구제가 가능하도록 개선하기 때문이다. 악의적인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서도 징벌배상을 도입하고, 벌금 상한을 10배 상향하는 등 영업비밀 보호도 대폭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경제사를 돌아보면 기술혁명이 촉발하는 변화의 흐름을 선도하는 국가는 업청난 과실을 향유했다. 1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영국이, 2차·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전기에너지와 정보화 기술을 기반으로 미국이 세계경제를 지배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또 한 번의 시대적 변곡점이 성큼 다가왔다. 이번 경쟁의 승리자는 과연 누가 될까? 신사업 개척자에게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는 지식재산 제도가 구축돼 먼저 깃발을 꽂으려는 혁신가들이 모여드는 국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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