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 진주’ 에스토니아 : 한국경제 천자칼럼 (2017년 7월 13일 목요일)

‘발트해 진주’ 에스토니아

 

고두현 논술위원

 

인구 130만 명의 발트해 소국 에스토니아. 중세풍의 수도 탈린은 ‘한자(Hansa)마을’로 불린다. 13~15세기 독일 북부에서 발트해 연안에 이르는 100여 개 도시의 상인연합체 ‘한자동맹’의 거점도시였기 때문이다. 1500년 완공당시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한 성당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 지금도 손님을 맞는다.
도시 곳곳에서 노래와 악기 소리가 들린다. 우리나라만큼 가무를 좋아하는 나라다. 소련점령기인 1989년 8월 23일, 이곳 사람들을 포함한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시민 200만 명이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인간 사슬은 600㎞나 이어졌다. 이때의 ‘노래 혁명’덕분에 1991년 독립할 수 있었다.
독립 당시 경제는 빈사상태였다. 1991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0달러도 되지 않았다. 살아남으려면 하루빨리 구체제를 벗고 시장경제로 전환해야 했다. 정부가 맨 처음 한 것은 정보기술(IT)로 인프라를 까는 것이었다. 유선전화기를 공짜로 주겠다는 이웃 핀란드의 제안을 거부하고 무선전화망과 인터넷 기지국을 설치했다. 국토의 절반 이상인 산림지역에서도 와이파이가 터지도록 했다.
이렇게 구축한 ‘디지털 강국’의 토양에서 세계 1위의 인터넷 전화 업체 스카이프가 탄생했다. 세계 최대 개인 간(P2P)국제송금업체 트랜스와이즈와 세계 최초 식료품 배달 로봇 제조업체 스타십테크놀로지도 나왔다.
에스토니아에선 200유로(약 26만원)만 있으면 15분 만에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 법인세는 없다. 이익을 배당할 때만 20%세율을 적용한다. 상속·증여세와 부동산보유세도 없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이 나라를 유럽에서 창업 활동이 가장 활발한 ‘핫스팟’ 1위로 선정했다.
학생들은 초등 1학년부터 코딩을 익힌다. 중학교에선 ‘창업’을 정규과목으로 배운다. 이런 교육 개혁으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2015년 싱가포르와 일본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한국은 11위다. 세계 최초의 전자시민권과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고 원격진료까지 시작했다. 모든 공공업무를 디지털화한 에스토니아를 국제사회는 ‘e-스토니아’라고 부른다. 지난해 1인당 GDP는 1만 7891달러로 독립 25년 만에 9배나 뛰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디지털 정책의 근간은 계속 유지된다는 점이다. 모든 정치인이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모델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잘 모르면서 정책을 마구 뒤집는 ‘얼치기’들은 설 자리가 없다. 말만 앞세우는 ‘훈수 정치’도 없다. ‘일을 배우는 길은 그 일을 직접 하는 것’이라는 에스토니아 속담이 그냥 나온게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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