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사이언스

‘과학은 인간적인가?’ 라고 묻습니다. 결론은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결코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GMC(Grand Master Class) 2019 에서 김상욱 경희대 교수가 강연자로 나서서 이야기 한 내용입니다. 태양과 별은 차이점이 없습니다. 태양은 가까이 있는 별이고, 별은 태양입니다. 과학은 인간을 배제합니다. 물질적 증거를 필요로 합니다. 빅뱅을 시작으로 시간이 생겨났습니다. 여러가지 증거가 빅뱅설을 뒷받침 합니다. 과학이란 이렇게 근거를 통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의미나 가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과학은 그냥 그런 것 입니다.

하지만, 과학을 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무엇을 연구할지 결정하고, 연구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과학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속에서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우리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종이를 지폐로 합의된 의미를 부여하고, 가지고 있는 지폐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의 가치를 상상 합니다. 행복이라는 상상도 합의가 있어 가능하며, 합의된 가치를 희망하는 것 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상상하는 것을 다루는 학문이 인문학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힘, 그것이 인간의 존재 가치 입니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상상 입니다.

 


크로스 사이언스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홍성욱 저 | 21세기북스 | 2019년 01월 23일

 

‘서가명강’은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의 줄임말로 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유익하고 흥미로운 강의를 엄선하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양과 삶에 품격을 더하는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공을 넘나드는 융합 강의를 일반일들도 배울 수 있도록 도서와 팟캐스트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서가명강’ 시리즈의 두 번째 책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한 ‘과학기술과 대중문화’ 수업에 근거한 내용으로 쓰여진 책 입니다.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가 책으로 펴내는데 용기를 내었다고 합니다. 저자 본인의 전공은 과학기술학이라고 강조합니다.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학기술을 역사적, 철학적,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 전반을 의미한다. 이런 과학기술학의 큰 분과 중 하나가 ‘시민의 과학 이해PUS,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이다. 351쪽

과학과 인문학, 사실과 가치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두 문화’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인문학에 대해 무지하고, 인문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지식인 행세를 하는 세태를 꼬집는 말입니다. 과학이 인문학에 대해 할 얘기가 없고, 거꾸로 인문학도 과학에 대해 할 얘기가 없다는 세간의 인식 때문에 그 간극은 벌어졌다고 합니다. 과학은 자연의 사실을 다루고,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를 다루는 것입니다. 두 문화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는 이런 분류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문화 속에서 과학과 인문학, 사실과 가치의 얽힘을 여러 사례를 들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은 대중문화, 세상, 인간, 인문학과 과학의 크로스(Cross, 교차)를 말합니다. 각 부의 마지막은 Q&A 묻고 답하기를 통해 핵심을 요약합니다. 다르게 보는 관점을 통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사실 외에 색다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부 대중문화와 과학의 크로스에서는 미친과학자, 슈퍼우먼 과학자, 오만한 과학자라는 부제를 통해 우리에게 각인된 과학자의 이미지를 이야기 합니다. 프랑켄슈타인, 퀴리부인, 걸리버 여행기 책과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킹콩 영화를 통해 과학자의 왜곡된 이미지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과학자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불과 몇 만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문자도 없이, 특별한 재능 없이 자기 몸 하나를 걱정하던 동물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러던 인간이 이제는 급기야 자그마한 풀로토늄 폭탄 하나로 도시 하나를 날려버리는 기술을 소유하게 되었다. 실로 업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문명 발달과 달리 인간이 가진 야만성은 조금도 순화되거나 성숙해지지 못해서 지금도 인간은 여전히 사람을 고문하면서도 재미를 느끼는 존재이다. 인간의 지혜는 기술 발전에 걸맞게 발전하지 못했으니, 이는 마치 몸은 성인이 되었지만 머리는 어린아이 같은 형상이라고 할까.51쪽

2부는 세상과 과학의 크로스 입니다. 영화에서 보는 유토피아가 완벽한 것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유토피아의 뒷모습 즉,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보이지 않는 빅브라더가 우리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그런 영화가 주는 의미를 통해 인간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을 해야 할 것 입니다.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크버그Mark Zuckerberg가 몇 년 전 자신의 입으로 “프라이버시는 죽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하듯 페이스북에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노출됨으로써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즉 빅브라더로서의 페이스북 기능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다.저커버그는 프라이버시가 죽은 더 큰 이유를 ‘자발적인 공유Sharing’이라 했다.172쪽

3에서는 인간과 과학의 크로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과학을 통해 우월한 유전자만 살아남는 세상이 오고, 유전자가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 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대중화 되면서 인간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처럼 생긴 사이보그가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도 많은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과 로봇이 전쟁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로봇에게도 적용되는 도덕적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지 않게 하려면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공상과학소설(SF) 작가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유명한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는 최초로 로봇의 3가지 원칙을 얘기했다. 첫째,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을 위배할 때를 제외하고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261쪽

4부는 인문학과 과학의 크로스로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과학기술이 도입되는 과도기 시대에서 살았던 인간의 감정은 어땠을까? 일제강점기에 집필된 소설에 등장하는 전기의 이미지를 예를 들고 있습니다. 변화와 함께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가정함으로써 근거를 듭니다. 예술은 상상을 통해 가치를 만듭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가정하는 것과 상상하는 것 어찌 보면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도 예술도 인간의 상상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릴레오는 관성의 법칙이나 자유낙하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다. 이런 법칙은 자연에서 찾아질 수 없다. 그는 마찰이 없는 평면, 저항이 없는 공간을 상상함으로써 이런 법칙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갈릴레오는 자신의 법칙이 만족되는 상황을 창조해낸 것이다. 이 부분에서 갈릴레오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물리학은 자연에 있는 법칙을 그냥 반영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규칙이나 법칙이 드러날 수 있는 공간을 창의적으로 만든 결과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일이 예술가들이 하는 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333쪽

대중문화를 통해 과학을 확인한 지금, 과학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학에서 말하는 ‘시민의 과학 이해’가 필요한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과학자 중에는 이렇게 인문학과 융합하여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일을 계속 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과학기술학자의 관심은 시민들에게 과학의 어려운 내용을 얼마나 쉽게 전달하는가에 있지 않다. 그보다 과학기술학자는 현대의 과학기술이 우리 삶과 너무나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더 나아가 인류의 생존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시민들이 어떻게 하면 다양한 과학 활동, 과학 정책, 과학 문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이런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351쪽

이 책도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한 책 같습니다. 인간답고 민주적인 과학 기술의 모습을 상상하고 이를 구현하는 것을 우리 모두의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저자의 바람이 느껴집니다.

 

  • 우리는 근대 이후 민주주의의 발전을 목도하면서 차이와 다양성의 가치가 세상의 발전과 민주주의를 낳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았다. 최근에는 창의성의 원천으로 누구나가 차이와 다양성을 꼽고 있다. 이렇게 차이는 소중한 것이다.(page 94)
  • 여기서 ‘천성’, ‘자연’, ‘피’, ‘유전자’, ‘본성’은 대부분 과학의 외피를 쓴 사이비과학이다. 사이비과학의 정반대는 신중한 과학일 텐데, 신중한 과학은 인종의 자연적 차이, 인간성과 지능의 유전적 차이, 고정된 성차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18~19세기 사이비과학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과학이 만들어내는 차별이 사라진 것은 결고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차별에 대해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차별은 항상 더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고, 더 은밀하게 우리의 허영심을 비집고 들어오기에 그렇다.(page 117)
  •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유토피아』에서는 과학기술이 거의 강조되지 않았지만, 그로부터 대략 100년 정도 지난 1627년에 나온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새로운 아틀란티스』라는 또 다른 유토피아 소설은 먼 미래에나 볼 수 있는 과학기술의 역할을 강하게 강조한다. 100년 시차를 두고 유토피아를 가능체 하는 조건들이 바뀌어버린 것이다.(page 134)
  • 우리는 풍성한 언어를 지키고, 언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page 186)
  • 지금의 휴대폰은 사실 하나의 기계가 아니다. 사람들이 휴대폰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사람과 사람을 긴밀하게 연결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전화통화를 하고, 메시지를 전하고, 카톡과 밴드를 통해 사람들과 소식을 주고받는 등 나와 세상을 24시간 연결해주는 휴대폰 없이 이제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즉 인간 네트워크에서 휴대폰이나 컴퓨터 같은 기계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인데, 이러한 기술 없이 이제 우리는 타인과 관계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미 우리 모두는 사이보그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page 221)
  •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좁은 이기심을 넘어선 세상에 대한 애정과 자비심이라는 사실을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page 249)
  • 보스트롬이 『초지능』에서 말했듯이 AI는 인간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감정들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공명하는 것이다.(page 274)
  •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힌 교양과학도서 중 하나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들이 많다.(page 306)
  • 인간은 질문하는 동물이고 언제나 궁금한 것을 알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의 등장은 필연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page 313)
  • 어떤 사실을 알게 되면 일단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실이나 가치가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은 우리의 일상과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사실과 가치는 그 연결이 느슨하거나 팽팽한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 속에서, 마치 동맥과 정맥이 모세혈관을 통해 연결되어 있듯이 미세한 연결망들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사실만의 세상에서 살아가지 않듯이, 가치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지도 않다.(page 323)
  • 『생각의 탄생』의 저자 미셸 루트번스타인Michele Rootbernstein은 노벨상 수상자를 연구한 바 있는데, 일반 과학자의 수와 비교했을 때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 중에서 사진을 하는 사람은 2배, 음악을 하는 사람은 4배, 미술은 17배, 공예는 15배, 작가는 25배, 무용을 하는 사람은 22배 정도 더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한 가지 예술에 준전문가적으로 깊게 몰입했던 사람들이었다. 창의적인 과학일수록 예술을 병행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과학이 상상력이 필요한 활동이라는 주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page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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