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은 기다림으로부터 나온다 : 디지털타임스 디지털 산책 (2017년 7월 11일 화요일)

창의성은 기다림으로부터 나온다

 

임현 KISTEP 선임연구원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요새 너무 유행처럼 번져서 식상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의 파고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 산업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는데 공감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서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같은 기술개발, 법·제도의 개선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방안들을 살펴보면 결국 창의적 인재 양성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이를 위해 국가 차원의 ICT 및 SW교육을 확대하고 토론 및 세미나식 수업이 강화된 스마트 교육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교육시스템의 틀을 바꾸는 것과 더불어 이미 현장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연구자들을 훨씬 더 창의적인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담 그랜트의 저서 ‘오리지널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보통 독창성은 위험을 무릅쓰는 기질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견과는 달리 독창성은 오랜 준비과정과 노력의 산물이다.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고 성공한 기업가들을 살펴보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기 보다는 아이디어가 실제 적용되었을 때의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하고 위험을 분산시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저렴한 온라인 안경점 ‘워비 파크’를 창업해 대박을 친 4명의 창업가들도 오랜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을 기울였다. 본인들의 아이디어가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찬 채 바로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으며, 함께 경영수업을 들으며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갔다. 창업을 시작한 이후에도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다른 사업 기회를 찾아 다녔으며, 설문조사 등을 통해 고객들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와블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내의 직원들이 자유스럽게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와는 반대로 아이디어의 혁신성에 취해서 제품개발을 비밀에 부치고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의견을 구해 실패한 경우가 존재한다. 스티비 잡스 등의 혁신가들로부터 관심과 찬사를 받으며 이동수단의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 전동스쿠터인 ‘세그웨이’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제품 출시를 서두르기 보다는 ‘위비 파크’처럼 회사 내 모든 사람들에게 제품을 공개하고 의견을 구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과학기술에 있어서도 기다림은 창의적인 연구를 위한 중요한 덕목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수행한 연구가 바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숙되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 초에 MEMS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자로 호암상을 수상한 UCLA의 김창진 교수의 세미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세미나를 듣다 보면 그의 학문적 성공의 비결이 고집스러울 만큼 ‘나노 및 마이크로 스케일에서 액체의 표면장력’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임을 알 수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 R&D투자의 낮은 효율성을 질타하는 많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매년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R&D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성과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과제보다는 쉽게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과제만을 수행하려는 연구자들을 탓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연구자들을 그렇게 내몰고 있는 환경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연구자들이 창의적이지 않고 도전적이지 못하도록 타고난 것이 아니라, 실패와 경험을 통해서 혁신역량을 축적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연구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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