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마음껏 흔들려야 오십이다

 

책 속의 글을 모두 읽는 편입니다. 아는 내용이라고 건너건너 읽지는 않습니다. 한글자한글자 읽다보면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했던 것에 대해 적절한 예를 발견합니다. 명확하게 표현한 문장을 만나기도 합니다.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단어 찾을 때도 있습니다.

회사에 다니던 10년 동안 많은 것을 배웠지만 또한 자괴괌도 컸다. 내가 일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된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잦은 부서 이동, 실행보다 기획이 우선되는 문화, 매해 단기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 같은 이유로 불필요한 일들을 자꾸 해야 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전문성이 쌓여야 하는데, 보고서를 상사의 구미에 맞게 쓰는 요령만 늘어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일 잘하기’에 속한다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나’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8년차쯤 되었을 때, 어쩔 수 없이 나는 일과 일상을 철저히 분리하기로 했다. 일과 회사는 생계수단으로만 여기고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며 나를 지켜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의 절반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일로 소모되는 자신을 일상에서 회복하기란 상당히 어려웠다. 단지 일상만이 아니라, 일을 통해서도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지킬 뿐만 아니라 일과 일상을 잇는 매개로 선택한 것이 바로 책, 그중에서도 다른 이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그림책이었다.황유진, ⟪어른의 그림책⟫에서

이 글을 읽는 순간 누군가가 또 내 머리속 내용을 정리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택한 책 종류만 다릅니다. 흔들리는 마음에 중심을 잡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합니다. 그 중심에 분명 책읽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쉰이라는 나이를 앞두고 요즘은 인문학 책에 관심을 둡니다. 그렇게 알게 된 책이 『중용』입니다. 일과 일상, 어떤 순간에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삶이 필요함을 읽었습니다. 읽은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듯이, 마음껏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는 것은 인생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기울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인생을 만나다
신정근 저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11일

 

유치원생 구십 명에게 계란 네 개를 풀어 ‘국’을 만들고 사과 일곱 개로 간식을 준 원장, 첫 만남에서 반말을 예사로 하는 사람, 만사를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대단치도 않은 일에 몹시 흥분하는 사람, 실제 가진 것보다 더 떠벌리는 사람, 다른 사람을 험담하고 자신을 올리는 사람, 밥 산다고 해놓고 산 적이 없는 사람, ‘내로남불’의 사람 등등이 있다.18쪽

요즘 우리 사회는 보편적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눈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해와 권리에 따라 해처 모이는 다원주의의 현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특정한 가치를 두고 논쟁을 벌립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기 보다는 진영 논리를 내세웁니다. 극단의 논리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일반 서민은 1장의 1~5조목에서 말했듯이 늘 만나는 사람과 교제하고 늘 지키던 덕목을 실천하며 지역과 세상을 선하게 만드는 평범의 가치를 중시하지 않았다. 일반 서민은 개미처럼 부지런히 평범이라는 덕목을 실천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삶을 거부했다. 그들은 한번 전쟁에 나가 큰 공오르 세우면 벼락출세할 수 있는 시운을 잡으려고 했다. 이러한 시운에 비해 매일매일 비슷한 평범한 일상은 매력도 없고 흥미도 없었다. 벼락출세를 가능하게 하는 극단의 삶을 동경한 일반 서민은 더 위험하지만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몰려들었다. 극단의 광풍이 불기 시작하자 일반 서민은 광풍에 뒤처질까 염려할 뿐 그 밑에 도사린 위험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 사태를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라고 주문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64쪽

중용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이 지금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주나라의 안정적 시대를 지나 춘추전국시대는 극단의 상황이었습니다. 보편적 가치로는 존중을 받을 수 없기에 자극적인 언어와 극단적인 행동이 관심을 끄는 시대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중용은 진영의 논리로 극단, 극혐이 득세하였던 시대에 중심을 잡고자 제시되었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중용』은 극단이 판을 치는 ‘소은행괴’의 세상에서 주위에 널려 있고 누구라도 실천할 수 있는 평범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쉰의 나이도 조명이 쏟아지는 특별特別하고 화려함보다 공기처럼 편안하고 일상처럼 부담 없는 보통普通에 다시 눈이 가는 때다. 보통이 결국 오래가기 때문이다. 『중용』과 쉰의 나이는 평범함에서 잘 어울린다.21쪽

마흔에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김경준 저, 위즈덤하우스)을 읽었습니다. 그 즈음에 리더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고,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오십, 쉰을 조금 일찍 먼저 경험하기 위해 중용을 읽는 입장에서 그때 그것이 과연 1순위가 될 필요가 있었는지 되묻게 됩니다.

방향은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고, 목표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계획이다. 내가 가고자 하고 이루고자 하는 것은 내가 정해야 한다. 잠깐 또는 일시적으로 방향이 흔들리고 목표가 애매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방향을 제시하라고, 목표를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어디로 가고자 하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스스로 분명하게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향과 목표를 찾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 당장 찾지 못해서 멀다고 생각할 뿐이다.88쪽

고전이 고전인 이유가 분명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삶에 대한 성찰에는 동양 고전이 더 어울립니다. 사람의 이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하지만,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계속 강조하고 회자 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모든 고전에서 알려주는 내용이 그릇 듯이 중용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다른 것 보다 중용은 더 지키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중용대로 살기는 결코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긴 인생 중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문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끊임없이 재연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복된 행위로 특정한 성향을 만들어 내는 덕목이 갖춰줘야만 실행이 가능합니다. 덕목이 불가역적 수준에 오르지 않는 한 잘하고 못하고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때문에 공자도 한 달을 지속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술회했다고 합니다.

『중용』에는 중용이 없다. 우리는 책 이름을 들으면 그 안에 이름에 어울리는 내용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용』은 그렇지 않다. 『중용』에는 중용이라는 개념이 자주 쓰이지 않을 뿐 아니라 중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풀이한 내용도 없다. 그렇다 보니 『중용』을 읽고 나더라도 중용이 뭔지 분명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중용』이란 책이 『대학』『논어』『맹자』에 비교해서 어렵다고 한다.113쪽

중용을 일과 일상의 균형에 비유해봅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첨단의 시대에 중용을 강조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이를 들어갈 수록 중용은 꼭 필요한 삶의 지혜가 됩니다.

술은 아예 마시지 않거나 취하도록 마시는 것보다 적당히 마시기가 어렵고, 화나는 상황에서 참거나 고래고래 고함치는 것보다 적당히 화내기가 쉽지 않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조용히 항의하면 아무른 반응이 없으니 과걱한 방법에 호소하게 된다. 이런 경험이 있다면 중용대로 살기가 어렵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72쪽

첫째, 회사에서 일이라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 외 일상에서는 오롯이 삶의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원칙을 벗어나는 무심한 말을 흘려들을 수도 있어야 하고, 진심어린 조언은 새로운 소임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쟁하는 시대에 호들갑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단련해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서 더 많이 가지려고 하면 함께 서지 못하고 독점하려고 한다. 독점욕에 사라잡히면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게 되는데, 이는 중심을 잡기 어렵게 만든다. 반면 여럿이 나란히 함께 가면 서로 어울려서 중심을 잡기가 편하다. 삶에서 중심을 잡으면 기우뚱거리지만 넘어지지 않게 된다.127쪽

둘째, 리더가 갖춰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궁금하면 잘 물어야 합니다. 주위를 잘 살펴 그들의 언어를 이해해야 합니다. 주위 사람의 단점은 숨겨주고 장점을 드러내야 합니다. 위를 보기 보다 아래에 그 마음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임금이 된다고 합니다.

포용하려면 결국 주위를 편하게 둘러보며 다양한 일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이 없으면 내가 직접 이것저것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 남이 있으면 내가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이처럼 주위에 사람이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나와 다른 것도 내가 달리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258쪽

셋째, 하루에 얼마의 시간이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은 숨길 곳이 아니라 자주 들여다 보고 부끄러움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재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휴가가 끝나더라도 계속 회사를 다니겠지만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휴가가 끝나고서 사표를 낼 수 있다. 과거에 휴가가 재충전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하는 노동자의 복지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자신을 돌아보고 사표를 생각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도대체 무엇이 하루 몇분이라도 자신을 돌이켜보지 못하게 할까? 그것은 바로 일상의 비정상화다. 우리가 일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으려면 시간에 맞춰 살 것이 아니라 시간을 이끌어가며 살 필요가 있다.127쪽

책은 원문을 해설하면서 입문(문에 들어섬), 승당(당에 오름), 입실(방에 들어섬), 여언(함께 말하기)의 단계를 설정하여 중용을 해석합니다. 입실은 원문의 독음과 한자를 번역하는 내용이라 빠르게 읽기 위하는 분이라면 건너뛰어도 될 것입니다. 핵심은 여운 부분입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적용하고 해석하여 실행과 실천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중용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저자는 별도의 순서로 재배치하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일과 일상을 잇기 위한 매개가 책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일과 일상을 새롭게 보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삶에 대한 원칙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 답을 중용이라는 고전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고전을 통해 일의 의미를 찾게 되고, 일을 할 때 원칙은 일상을 외면하지 않게 합니다.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 사이에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것, 중용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할 것입니다.

처음에 소개하였던 책에 나오는 글로 마무리 합니다.

나 역시 책으로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오롯이 나를 가꾸어가고 싶다. 또한 책 속에 갇히지 않고 일을 통해 사회와 맞닿으려 한다. 나를 지키는 힘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할 때, 비로소 오래도록 편안하게 일할 수 있다고 믿는다.황유진, ⟪어른의 그림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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