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언어의 온도》 책 저자인 이기주씨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프로’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 전문가의 준말로, 그 어원적 뿌리는 ‘선언하는 고백’이란 뜻의 라틴어 프로페시오professio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들 앞에서 “난 전문가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할 수 있어야, 그리고 그에 따른 실력과 책임감을 겸비해야 비로소 프로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 프로” 라고부르는 사람들은 하기 싫은 일도 끝까지 해내는 경향이 있다. 그냥 끝까지 하는 게 아니다. 하기 싫은 업무를 맡아도 겉으로는 하기 싫은 티를 잘 내지 않으면서 유연하게 마무리 한다. 왜? 프로니까.
이와 달리 ‘아마추어’는 라틴어 아마토르amator에서 유래했다. ‘애호가’ ‘좋아서 하는사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취미삼아 소일거리로 임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마추어는 어떤 일이나 과정에서 재미와 즐거움 같은 요소가 사라지면 더는 하지 않는다. 아마추의의 입장에선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새삼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프로와 아마추어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인지 모른다고.158쪽

마지막 문장에 밑줄을 그었던 것이 보입니다.

 


아마추어 영혼 없는 전문가에 맞서는 사람들 / 세상을 망치는 주범들로부터 현실을 바로잡을 사람은 넓고 유연한 사고의 아마추어들이다!
앤디 메리필드 저/박준형 역 | 한빛비즈 | 2018년 08월 30일

 

이 책은 아마추어의 또 다른 정의로 전문가에 맞서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가는 모두를 말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영혼 없는 전문가들 입니다. 제 밥그릇에만 관심을 두는 지식인, 기관에 빌붙어 양심을 파는 교수, 정권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짜집기 하는 언론인등을 말합니다. 책 표지에도 있듯이 세상을 망치는 이런 전문가로 부터 현실을 바로잡을 사람이 아마추어라는 것입니다. 넓고 유연한 사고가 핵심을 이루는 아마추어 정신으로 전문가의 폐단에 맞설 때라는 것입니다.

전문가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용감한(?) 의견을 책으로 낸 저자는 앤디 메리필드 입니다. 도시계획에 대한 글을 쓰고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도시공간이 현대사회의 자본축적 장소이자 반란의 장소임을 주목하면서 도시 근대화, 비판이론 등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 중간중간에도 이런 저자의 소신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저자 스스로 탈학교화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배우지 않는 법을 배웠고, 계속해서 저항하는 길을 쫓았다는 것입니다.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저자 자신이 경험한 무궁무진한 즐거움을 전달하는 일 뿐이었다고 합니다. 책의 244~255쪽에서도 본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직도 스스로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이말은 비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의 가장 큰 문제점이 집단 권력, 이권입니다. 권력자들이 그들의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어떤 결론을 수단으로 동원할 때, 진실은 부차적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지금처럼 전문화된 시대에서 숫자는 더 이상 웃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 숫자는 중요하다. 숫자는 믿을 수 있고 권위적인 지식과,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절대적 지식을 구성한다. 숫자는 정책을 결정하며,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야심에 가장 잘 들어맞는 숫자를 선호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숫자를 제공할 전문가를 찾는다.(중략)
이제는 일상의 모든 부분이 저장되고 측정되며, 수치로 확인되어 수량화 된다. 그다음에는 여기에 가격이 붙는다. (중략)수익성 높은 기회는 수없이 많다. 특히 전문가들과 구글, IBM, 시스코, 지멘스 같은 대기업의 경우 그렇다. 이들 대기업은 최신 제품 패키지를 권하면서 정부가 추진할 포괄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정치적인 삶과 시민의 삶 모두 최적화를 이루겠다는 약속의 대가로 대기업에 넘어간다.(중략)
숫자는 현실 자체가 아니라 현실의 표현이다. 그 뒤에는 전문가들의 거짓말이 숨어있다.85쪽
‘도시의 새로운 과학’은 측정과 분류, 순위와 회복력에 매료되어 있다. 유엔 해비타트는 최근 IBM 및 AECOM이라는 다국적 기술 그룹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최우수 사례를 개발하기 위해서 시험용 성과표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점수가 높은 도시는 ‘미래 대비’적이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IBM과 AECOM에 수백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138쪽

전문가, 컨설턴트, 기술 관련 기업이 계산한 끝없는 지표로 단순화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지표들은 어떻게 정량화될 수 있을까? 그리고 단순화한 지표가 우리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는 것입니다.

책은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장한장 넘어가면서 본인의 비판의식에 대한 근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이야기 합니다. 2장에서는 그 차이가 믿음의 문제라고 합니다. 3장에서 지식의 올바른 사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4장은 아마추어가 만든 도시가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5장에서는 전문가들이 만든 세상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룹니다. 6장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아마추어 정신을 들먹입니다. 7장은 이런 현실에 맞서기 위해서는 호기심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8장은 정해진 삶보다는 스스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9장은 아마추어들의 행동을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이야기 전반에는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고전의 책들을 내놓으며 비판에 대한 근거들을 더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말했듯이, 선한 의도를 가진 아마추어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저녁과 주말을 희생해야 하며, 상당한 헌신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아마추어의 힘은 모순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기 내부와 사회 속의 모순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힘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흐름 속으로 거슬러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바라보고, 전문화된 시스템의 가면을 꿰뚫어볼 수 있는 힘이다.(중략)
아마추어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 일하며 자신의 인생을 직접 써나간다는 뜻이다. 자신이 하는 일과 끈끈하게 연결되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자기 존재와 행복에 직접적인 의미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아마추어가 되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길이다. 아마추어주의 역시 사랑처럼 마음의 작용이다. 복잡하고 어지러우며, 가끔은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언제나 인간이 느끼는 정직한 감정일지 모른다.276쪽

처음 글에서 프로와 아마추어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인지 모른다고 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호기심과 상상력을 무한 발휘할 수 있는 태도,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아 유연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런 태도.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아마추어 입니다.

무의미한 작업은 동기를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에 우리가 하는 일과 개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도 없다. 이는 엄청난 잠재력 낭비이며, 인류의 진정한 비극이다. 게으름은 무관심으로 변하고, 그 결과 게으름은 더욱 심해진다. 당근과 채찍을 아무리 사용한다고 해도, 죽어버린 몸과 마음, 영혼까지 되살릴 수는 없다.175쪽

현실에서 더 이상 역할을 연기를 하거나 역할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연극 속에서 스스로의 배역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내부에서만 인정을 받고 동료끼리만 서로를 인용하는 자기 언급적인 학문이 실제로 어떤 영향력이 있는 걸까? 인용 횟수가 많을수록 학자로서 인정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이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다. 어떤 지표는 종신재직권과 승진, 보조금과 펠로우십, 화려한 초청직과 명예직을 얻기 위한 기반이 된다. 오늘날의 아이디어 시장에서, 인용은 통화 단위이자 학문적 성공을 보장하는 신용카드와 같다. 인용은 누군가의 작업물에 들어간 질을 측정하는 게 아니다. 고위층이나 학술저널 편집자, 전문가 시장을 지키는 문지기에 이르는 인맥의 범위를 측정한다.(96쪽)
  • 무의미한 작업은 동기를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에 우리가 하는 일과 개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도 없다. 이는 엄청난 잠재력 낭비이며, 인류의 진정한 비극이다. 게으름은 무관심으로 변하고, 그 결과 게으름은 더욱 심해진다. 당근과 채찍을 아무리 사용한다고 해도, 죽어버린 몸과 마음, 영혼까지 되살릴 수는 없다.(175쪽)
  • ‘성과’문제는 끈질기다. 성과는 우리를 내면부터 갉아먹으며, 계층을 가로지르고 고용 사다리의 위아래를 오르내린다. 가장 밑바닥에는 마지못해 일하고 동기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다. 가장 위쪽에는 최선을 다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회사와 조직을 위해 ‘인간적인 이야기’를 제안해주는 ‘스토리 전략과’ ‘미래학자’ ‘기업 스토리텔러’라는 꼬리표를 단 모든 영영 잡설과 규칙을 빨아들인다. 이것은 자기 표현과 자기기만을 통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새로운 형태이다. 마치 서클에서 메이가 그런 것처럼, 자신의 일이 중요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듯하다.(187쪽)
  • 보들레르는 아이들이 늘 ‘취해’있다고 표현했다. 아이들은 모든 색깔과 모양을 빨아들인다. 아이들이 처음 내뱉는 단어이자 다른 말을 배울 때까지 입에 달고 사는 단어는 ‘왜?’이다. “이건 왜 이렇지?” “저건 왜 저렇지?” 세상은 신비하고, 아이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보들레르는 성인도 아이들과 같은 호기심을 되찾거나 잃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처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36쪽)
  • 일단 전문가 목록에 이름을 올리면 영원히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번 전문가는 영원한 전문가이며, 언제나 고정된 배역을 맡는다. 카테고리를 바꾸는 일은 설사 그러고 싶더라도 매우 어렵다. 학문적 경제를 통제하는 지적인 수문장들은 쉽사리 비밀 취급 인가를 내주지 않는다. 평판과 자격을 갖추지 않은 미지의 지적 영역이나 다른 사고 영역에 쉽게 발을 들이게 놔두지 않는다. 전문성은 순수한 학제간 연구와 탐구심으로 가득한 학구열을 좌절시키고 호기심을 가로막는다. 상상력을 망가뜨리며, 지금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를 때나 한 주제를 완벽히 이해하기 전까지 느껴지는 혼란에서 오는 순수한 즐거움을 무시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야 말로 전문성으로 향하는 진정한 길이다. 단기간의 트레이닝 과정이 아니라 평생 동안 지속되는 과정을 통해 얻어낸 무언가다.(244쪽)
  • ‘직업’은 ‘거래’와 마찬가지로 다뤄지며 전문적으로 비인간화된다.(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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