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5G 보다 더 중요한 것 : 디지털타임스 데스크 칼럼 (2018년 1월 8일 월요일)

세계 최초 5G 보다 더 중요한 것

 

강은성 정보통신콘텐츠부 차장

 

ICT강국 코리아. 참 멋진 말이다. 1996년 세계 최초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상용화가 그 시작이다. 한국전쟁 이후 중후장대·노동집약 산업을 중심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궜지만, 곧바로 맞이한 외환위기로 국격이 땅에 떨어진 시점이었다.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국가라는 타이틀과 닷컴 경제를 중심으로 한 IT 산업이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이끌었다. 세계 유례없는 전자정부 시스템으로 IT 강국의 정점을 찍었다. 대한민국은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우리 정부가 ‘세계 최초’ 타이틀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이유도 이런 ‘추억’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세계 최초로 5G를 구축하자고 가장 큰 목소리를 외치는 이는 통신사가 아니다. 5G 네트워크를 기반 삼아 새 기회를 모색하는 산업군도 아니다. 바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초’, ‘조기 상용화’ 노래를 부른다. 비단 우리 정부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도, 일본과 중국, 유럽도 5G 조기 상용화 경쟁에 돌입했다. 누가 먼저 ‘최초’라는 골인 지점을 통과하는지 국가별 자존심 싸움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이것도 좋다. 5G를 최초로 상용화하면 단순히 ‘명예’만 얻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5G구축을 추진하는 국가의 장비 산업과 5G 기술 표준 등에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 기업의 수출 확대와 경제 활성화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터다.
그런데 최근 과학기술정통부의 행보가 다소 우려스럽다. 5G 최초 상용화에 간절한 염원을 담은 나머지, 지금 이야기하는 그가 장관인지 통신사 사장인지 구분이 어렵다.
5G 망 구축은 4G LTE 때와 또 다르다. 5G 주파수는 초고주파 대역으로 수렴되는 모습이다. 초고주파는 신호가 멀리 뻗지 못한다. 직진성이 강해 높은 빌딩이나 산 등 방해물이 있으면 신호가 도달하지 못하는 음영지역도 다수 발생한다. 결국 그 ‘커버리지’는 더 촘촘하고 많은 ‘기지국’으로 보완할 수밖에 없다. LTE보다 최대 10배에 달하는 투자비가 소요될 것이라 예측되는 이유다.
과기정통부는 이런 부분이 그렇게 걱정이 됐나 보다. 유영민 장관은 “과도한 비용으로 인해 통신사가 5G 투자에 소극적이게 되면 조기 상용화 일정도 차질이 생긴다. 높은 투자비가 이용자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면서 “통신사의 투자비를 낮출 수 있는 방안을 정부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관의 발언과 동시에 과기정통부는 필수설비 공동활용, 5G 주파수 경매대가 산정방식 조정 등을 정책 방향으로 내놨다. 필수설비는 이용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측면 때문에 설비 공유가 보다 확대되어야 한다니 일견 이해가 간다. 하지만 주파수는 모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사용할 ‘권리’가 있는 공공재다. 효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민이 정부에 일임했고, 정부는 이를 경매에 부쳐 세수로 확보함으로써 국민의 세금부담을 덜어주고 국가 정책의 밑천으로 활용하는 자원이다. 이 대목의 어느 부분에서 통신사의 투자비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주파수 할당 대가를 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도출되는 것인가.
5G 구축 경쟁은 이미 진행형이다. ‘디지털 무브번트’에서 한발 뒤처진 순간 회복하기 힘든 손실을 입는다는 사실은 기업 스스로 가장 잘 안다. 통신 3사는 이미 전담 조직을 편제하고 CEO가 직접 5G 구축 현황을 챙기며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사활을 걸고 천문학적인 투자를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다. 비싸다고 망설일 투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기업의 투자 가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보상으로 받는 것이다. ‘확실한 보상’이 기대되는 곳에 투입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저축이다.
5G 최초, 조기 상용화가 국가에 실익을 주는 만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분명 맞다. 하지만 기업의 미래는 정부가 고민할 것이 아니다. 경영자의 몫이다. 정부는 국민의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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