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없는 기술이 ‘맹목’인 이유 : 디지털타임스 디지털 산책 (2017년 3월 31일 금요일)

문화 없는 기술이 ‘맹목’인 이유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등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들은 산업 구조는 물론이고 일자리, 교육, 일상의 모습도 크게 바꿀 것이다.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살아남을 수도 있고 아니면 사라질 수도 있다. 정부와 과학계, 산업계는 무엇보다 신기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새로운 발명과 발견으로 이뤄지는 기술 발전은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한다고 사회가 자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일지라도 사람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과학기술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지만 사람들이 이를 수용하고 사용할 때 비로소 가치창출이 일어난다. 보통 기술이나 상품 등 물질 변동에 비해 제도, 인프라, 의식, 가치관 등 비물질적인 문화는 변화 속도가 매우 더디다.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의 변동 속도 차이로 나타나는 부조화 현상을 사회학자 오그번은 ‘문화지체’라고 불렀다.
빠른 기술변화에 의해 분화변화가 지체되는 현상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가령 자동차 수는 빠르게 늘어도 교통환경이나 도로교통법 정비는 느리고 교통질서의식도 쉽사리 정착하지 않는다. 의학 발달로 노령인구는 증가하지만 노인복지제도는 늘 미흡하다. 바이오 기술은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데 여기에 걸맞은 생명윤리는 제대로 확립되지 않는다. 자동화로 실업이 발생하지만 실업대책과 일자리 정책은 충분하지 않다. 이런 모든 현상이 문화지체로 빚어지는 사회 문제들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 되면 문화지체 현상은 더욱 더 심각해질 것이다. 빠른 기술 변화를 수용할 제도, 법, 윤리, 가치관의 변화가 제때 이뤄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만 하더라도 기술발전 속도에 비하면 산업현장에서의 수용 준비, 법제도의 정비 등이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인공지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고 인공지능 윤리에 대한 토론도 활발하지 못하다. 오히려 인공지능 발전이 양극화와 인간소외 현상을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까지 바뀌어야 비로소 근본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계에서 연구개발과 함께 과학문화를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학기술 발전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문화의 창달을 통해서 의미를 갖게 된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회와 소통하지 않고 문화로 정착되지 않으면 결코 과학기술사회가 될 수 없다. 과학이 문화가 되지 않으면 과학은 사회와 유리되고 과학기술인들은 대중과 따로 놀게 된다. 과학문화와 과학교육은 연구개발 만큼이나 중요하다.
변화는 기술로부터 시작되지만 문화변화로 이어지지 않으면 기술은 오히려 인간과 멀어지게 된다. 그럴 경우 문화 지체 현상은 가치관의 혼란을 부채질할 수 있다. 과학기술에 쏟는 관심만큼 과학문화와 인간 문제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전략 수립은 시급하고 절실하다. 하지만 이 전략이 무엇을 연구하고 개발할 것인가 하는 전략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과학 문화 전략과 인재육성 전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4차 산업혁명의 연구개발은 성공할 수 없다. 연구개발 성과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수용하고 확산할 것인지, 대중적 공감대는 어떻게 만들 것인지, 윤리나 가치관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과학문화 전반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과학기술발전을 이끌어갈 인재를 어떻게 수급하고 양성할 것인가 하는 인재양성전략도 함께 수립돼야 한다. 연구개발과 과학문화, 과학교육의 트라이앵글은 말 그대로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 기술발전이 빠른 때일수돌 우리는 인간과 문화라는 가치를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걸 놓는 순간 인간없는 기술, 문화 없는 문병이 득세하게 된다. 기술문명시대에 기술과 인간, 과학과 문화는 함께 가야만 한다. 기술없는 인간은 공허하고 문화 없는 기술은 맹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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