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과 무지<無知> : 전자신문 데스크라인 (2017년 4월 4일)

만우절과 무지<無知>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토요일이기도 했지만 올해 4월 1일 만우절은 조용하게 지나갔다.
현실이 더 소설같은,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간조차 쉽지 않은 세상에서 1년에 한 번 해학 섞인 거짓을 이야기하는 장난도 이제는 사치로 받아들여졌는지 모르겠다.
탄핵과 전직 대통령의 구속 수감이라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가짜 뉴스가 넘쳐났다. 조기 대통령 선거 실시를 앞두고 가짜 뉴스는 한동안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사실이 아닌 것들이 유포되고 있지만 이를 가려내기도 쉽지 않다.
인터넷 발달로 디지털미디어 환경이 대중화되면서 새로운 정보의 생산과 유통은 더 이상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자나 언론사는 뉴스 생산과 유통을 독점할 수도 없고, 신뢰 또한 이전만큼은 아니다. 언론이나 기자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그동안 언론이 쏟아낸 수많은 뉴스가 100% 진실은 아닐 수 있다. 기사와 다른 방향으로 결론 났더라도 당시에는 사실이라고 판단할 만한 배경과 취재에 근거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는 가짜 뉴스는 다른 것 같다. 어떤 목적을 위해 의도된 거짓으로 채워진다. 뉴스라는 이름이 붙는 것조차 안타깝다.
사람의 경쟁력을 지식 관점에서만 나눠 보면 현재는 3기 지식사회다.
1기는 머리속에 많은 지식을 넣어 둔 사람이 경쟁력을 발휘하던 시대다. 2기는 필요한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하던 시기다. 이 시대에는 네트워크(또는 인간관계)가 경쟁력을 좌우했다. 3기는 수많은 정보 속에 진짜 가치 있는 것을 가려내고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누구나 정보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그 유통 플랫폼도 다양화되면서 정보는 차고 넘치게 주어진다. 이제는 그를 판단하는 능력이 진짜 가치를 가진다.
지식(知識)은 더 이상 능력이 아니고, 무지(無知) 또한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 스스로의 의지나 학식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어떤 종류의 무지든 그것은 필연이다. 무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무지에 대해 알고 있는 무지, 그리고 자신의 무지에 대해서조차 모르는 무지.
오늘날 정보의 홍수에서 만들어지는 무지는 후자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무지는 가짜 뉴스 같은 사회의 역기능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휩쓸리게 만든다.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무지함을 알면 확인하고 벗어나고자 한다.
일반인에게 무지는 허물이 아니다. 단지 관심이 적었을 뿐이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의도하지 않았거나 몰랐다고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의 무지는 죄가 된다. 진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이를 외면하는 것 자체가 큰 잘못이다. 이미 경험했다.
“세월호는 한국 용공과 북한이 손잡고 일으킨 사고”라며 막말 논란을 일으킨 어떤 교수는 가짜 뉴스에 근거해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모 자치단체장은 카카오 단체방과 페이스북을 통해 비방 글과 가짜 뉴스를 퍼 나른 사실이 확인 돼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당했다.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행동은 아니다. 무지함을 들어 면죄부를 줄 수도 없다. 내년 만우절에는 해학 넘치는 걸쭉한 거짓말과 함께 기분 좋게 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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