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작년 말, 늙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책들이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기준으로 나이듦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권세나 막강한 재력이 아니라 부드럽지만 어긋나지 않는 인격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철학에 대한 접근으로 이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나잇값을 위해 인문학을 다시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만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입니다.

요즘엔 늙어가는 것에 더해서 죽음에 대한 책들이 많이 보입니다. 어떤 노인이 될 것인가를 떠나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과학 분야에서는 생명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이야기 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죽음을 객관화 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으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유성호 저 | 21세기북스 | 2019년 01월 23일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노인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 ‘벌써’ 세상을 많이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된 것은 귀한 존재가 됩니다. 공경을 받아야 될 존재인 것입니다. 반대로 공경을 받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늙어가는 방법도 필요합니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다 보니 어른이 되었다는 핑계는 안됩니다. 나이만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듯이 이상한 어른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또 모두 사라집니다. 생명체 중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이 과학에 바탕을 둔 자연스러운 죽음입니다. 죽음도 그냥 시간이 지나서 죽는 것 보다는 제대로 죽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죽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죽음을 이해해야 삶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삶을 소중히 생각하게 되면 매순간 소홀할 수 없습니다.

내적 요인이나 외적 요인이 생체에 작용하면 여러 반응계가 작동해 생체는 동적 평행 상태를 유지하므로 이른바 반응계가 작동한다. 그러나 내적 또는 외적 요인이 생체의 황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나면 동적 평형 상태는 깨지고 생명 활동은 완전한 정지를 향해 불가역적인 변화를 시작한다. 즉 자극에 대한 반응성이나 운동성은 감소하고 약해져서, 결국에는 대사 기능도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다. 이 상태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죽음permanent cessation of vital reactions of individual이다.121쪽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고 말하는 책입니다. 자신과 주변의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그런 생각을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마무리할지에 대한 큰 계획을 세우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대세를 거슬러 이제 우리는 죽음을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쪽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142쪽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은 유성호 입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법의학자입니다.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로 소개됩니다. 20년간 1500여 건의 부검을 담당하였습니다. 죽은 자에게서 삶을 배운다고 합니다. 죽음에 관한 색다른 시각을 제안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있고 100가지의 죽음이 있는 것이다. 나만의 고유성은 죽음에서도 발휘되어야 하지 않을까?246쪽

책은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의 첫번째 책입니다. ‘죽음의 과학적 이해’강의가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 입니다. 총 3부로 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법의학자를 소개합니다. 법의학의 정의, 법의학을 통해 확인한 죽음의 진실을 이야기 합니다. 법의학 앞에 완전 범죄는 없다는 것입니다.

법의학자는 확실한 증거로써만 진실을 추구한다. 그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든,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든 서사에 관심을 두기보다 명확한 증거에 입각해서 추론하는 것이다. 경험으로 쌓인 느낌이라든지 감각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결정적 판단은 오롯이 백퍼센트 과학적 증거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법의학이다.55쪽

2부는 죽음을 말합니다. ‘생명의 시작은 언제부터 인가?’하는 논쟁거리부터 시작합니다. 죽음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죽을 권리와 살릴 의무에 대한 의료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꺼냅니다. 죽음이 사회를 바꿀 때도 있다고 하며,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알려줍니다.

우리가 자살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 즉 죽고 싶어 죽는 것이라거나 즉흥적인 판단의 결과라는 것은 모두 틀린 말이다. 세상에 진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다. 죽음의 이유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176쪽

3부는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죽음은 내 인생의 마지막 스토리라고 합니다. 마지막 순간 나만의 이야기를 남겨야 됩니다.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에는 죽지 않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과학적 발전을 이야기 합니다.

‘G/N/R’로 불리는 지네틱스, 나노 테크놀로지, 로보틱스 등이 원할히 합쳐지는 세상에서 인류의 삶은 어떤 전환점을 맞게 될까? 그렇다. 그러한 세상에서는 죽지 않는 영생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이다.255쪽

일본에서는 종활(終活)이 하나의 사회적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종활은 일본 고령자들이 인생의 종말을 충실히 마무리하기 위해 벌이는 활동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비즈니스로 연결되어 처음의 의미가 퇴색되기도 하였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트랜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버킷리스트를 실행에 옮기고, 임종노트를 씁니다. 갑작스런 죽음을 대비하여 미리 유언장을 쓰기도 합니다. 연명의료계획서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인간다운 죽음이란 일방적으로 병원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을 행사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러한 선택을 현명하게 할 수 있도록 이것저것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 병원 본연의 역할이라는 것이다.224쪽

죽음을 위해 특별하게 더해서 해야 할 일은 없다고 합니다.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 종활이라는 것입니다. 인생 스토리를 스스로 종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입니다. 그 인생 스토리는 후회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죽음의 의미를 알고, 죽음을 공부하고, 죽음이 더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죽음을 알아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알게 된다는 이러한 역설이 철학적으로 다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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