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을 생각한다

한승헌(韓勝憲, 1934년 9월 29일 ~ )은 군사정권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던 법조인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다.

한승헌이라는 인물에 대해 위키백과 첫 줄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북 진안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전주고와 전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검사생활을 하였습니다. 이후 변호사로 전신하였습니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탄압받는 양심수·시국사범의 변호와 민주화·인권운동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시기에 두 번에 걸친 옥살이, 변호사 자격 박탈 등을 당하게 됩니다. 8년 만에 변호사 자격은 복권되었으며 이후 시국 사건의 변호를 계속해 왔습니다. 여러단체에서 직분을 맡아 일해왔습니다. 책도 많이 펴냈습니다.

그의 험난한 여정 속에는 많은 사람들과의 접점이 있게 됩니다. 그렇게 쌓인 인연 속에는 잊을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자가 기억하는 사람들 중에는 세상과 이웃을 위해 ‘사서 고생 하는’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마 저자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여정이 그런 과정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을 생각한다
한승헌 저 | 문학동네 | 2019년 05월 08일

 

우리나라의 5월을 생각하면 대표적으로 5월 18일 민주화 운동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민주화에 대한 많은 사건들은 있습니다. 그 사건들을 떠올리다 보면 기억되는 몇몇 사람들 또한 있습니다. 아직 살아계시는 분도 있을 것이며, 이미 운명을 다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을 직간접적으로 마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죽음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살아 계실 때 그 분들과의 인연을 기록하는 건 어떨까요?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위해 노력하신 그 분들의 삶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길잡이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책을 펴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합니다.

그들의 삶을 널리 알려서 독자 여러분의 인생역정에 아름다운 도반道伴으로 삼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유명인사들의 평전이나 일대기는 아니다. 다만 내가 직간접으로 교감한 인물들과의 접점과 경험을 사실대로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6쪽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공적인 시간을 모두 경험하거나 감내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자신의 역할과 위치에서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마주할 뿐입니다. 그렇다 보니 동시대를 살고 있더라도 특정 사건에 엮이거나 인연을 맺는 사람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삶 속에서 특정한 인물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얽히고 얽힌 많은 사람들의 시각이 기록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기록을 통해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객관화 될 수 있습니다.

이 책도 그러한 관점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한 인물이 처했던 시대상황과 삶의 행보를 2페이지 정도를 할당해 이야기 합니다. 그런 다음 저자가 만났던 인물의 인간적인 측면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위해 새롭게 쓴 글도 있지만 이미 작성해 놓은 글들을 포함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인물에 대한 삶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삶속에 저자와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으며 관계를 가졌던 시기의 굵직한 사건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사건들의 대부분은 민주화와 인권운동입니다. 이러한 활동이 중심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기록한 내용은 변호 과정의 변론 내용을 소개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공식적인 기록입니다. 이 공식적인 말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설명하는 말이 됩니다. 변론을 하는 장면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조장로(시민운동가 조아라 선생)님의 그런 말씀은 나 같은 변호사의 법정 변론보다 훨씬 명쾌하고 호소력이 강하다. 그분 자신이 광주민주항쟁 때의 군사법정에서 하신 최후진술은 너무도 날카롭고 감동적이다.
“이 모든 사건은 저지른 사람, 만든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또한 하느님이나 역사가 기억을 하고 있으니까 언젠가 전부 드러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아무런 죄가 없고 누군가 불을 질러놨기에 그 불 끄러 들어간 사람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법은 어떻게 된 법이길래 방화범은 안잡고 불 끄러 간 선의의 사람을 데려다가 이렇게 우리를 죄인 취급하는지 그것이 의아스럽다.”104쪽

저자는 총 27명의 대표적인 그 분을 생각합니다. 그 분들 중 현재 살아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살아계신 분들 중에는 저와의 인연이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분들에 대한 기록을 읽을 때는 제가 생각하는 그분의 모습과 비교도 해봤습니다. 그리고, 대표적인 그 분들을 생각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조연들도 등장합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사서 고생을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인이 있는가 하면,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칫 자신이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죄인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준엄한 자기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119쪽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을 나쁘게 해석하면 기껏해야 ‘과거’에 머물 뿐입니다. 기록 자체는 과거 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걸어온 삶에서  ‘성찰’을 얻는 것은 현재 입니다. 그 성찰을 공유하는 것은 현재를 넘어 미래와의 대화를 시작하는 것 입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재검토하고, 가능하다면 새로운 해석을 통해 인식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합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재평가를 이야기 하는 내용도 이런 관점일 것입니다.

국제법학자협회가 ‘최악의 사법살인’으로 꼽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2002년에야 진상이 밝혀졌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고문으로 과장 및 조작됐다고 결론지었고 재판부도 피고인들의 몸에 고문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고, 변호인이나 가족과의 면담이나 접견이 허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는 자료 등을 토대로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317쪽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그 분들의 삶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인권은 그나마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실은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근·현대사의 역사를 후대에 전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들, 그분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던 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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