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정책에 ‘교육’이 없다 : 매일경제 매경의 창 (2019년 1월 11일 금요일)

교육 정책에 ‘교육’이 없다

매경의 창

이혜정 교육과학혁신연구소장

정답찾기식 사교육에 밀린 공교육 현실 그린 드라마 SKY캐슬 화제
검색·사색·탐색과정 통해 생각하는 힘 길러주는 ‘진짜 교육’ 자리 잡아야

요즘 대치동 입시 최전선의 모습을 그렸다는 드라마 ‘SKY캐슬’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하도 화제로 해서 찾아봤다. 드라마적 설정을 위한 일부 과장은 분명 있으나 전반적으로 입시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대치동 모습을 상당히 리얼하게 그렸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드라마는 특히 최상위권 사교육 현실을 그리면서 우리 공교육이 얼마나 처절하게 무너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교 1·2등 수준의 아이들도 학교에서 교사의 수업을 듣지 않고 다른 공부를 한다는 것, 교사 역시 제대로 된 수업 없이 인터넷 강의나 자습으로 때우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 최상위권이나 중하위권이나 모두 학교보다 사교육계를 훨씬 더 신뢰한다는 현실을 가감 없이 그렸다.
한국 학교를 방문한 외국의 교육자들은 한국 학교에서 업드려 자는 많은 아이들을 왜 깨우지 않는 지 궁금해한다. 조용히 자 주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교사들의 자조적 반응은 더더욱 납득하지 못한다. 이 현상이 얼마나 심각하면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성열관 저)이라는 책까지 나왔을까.
주목할 점은 우리 공교육이 중하위권뿐 아니라 최상위권까지 무너져 버렸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은 공교육이 주도하고 사교육이 따라오는 것 같지만, 실상 사교육이 중심이고 공교육은 들러리가 된 지 오래다. 교육 관련 언론 기사에서도 전문가 인터뷰로 학교 교사가 아닌 사교육계 입시 전문가를 인용하는 형태가 오래됐다. 전국의 교사들을 만나보면 학교 교육 붕괴에 무력감을 호소한다. 열정 있는 교사일수록 절망감에 빠진다. 교사, 학부모, 학생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의 몰락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최상위권도 시대의 경쟁력을 기르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런 총체적 난국을 해결할 국가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무너진 공교육은 단순히 수시·정시 비율을 조정하는 차원으로 되살릴 수 없다. 현재 국각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다 실현돼도, 인공지능 시대에 어떤 능력을 기르고 평가할 것인지 패러다임적 전환이 없으면 공교육 회생은 불가하다. 공교육의 질적 붕괴 상태에서는 아동수당과 무상교육 예산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양극화도 결코 줄일 수 없다. 대통령이 언급한 ‘개천에서 용 나오는 사회’를 만들려면 정책 프레임이 ‘기회의 양적 확대’를 넘어 ‘공교육의 질적 혁신’이어야 한다.
최근 프랑스에서 대입제도 개혁에 반발하는 시위 뉴스가 보도되곤 하지만, 기존의 추첨제에서 내신 반영제로 가자는 것에 대한 반발일 뿐, 개혁파든 반개혁파든, 바칼로레아 시험을 본절적으로 바꾸려 하지는 않는다. 서구 선진국 전역에서 불수능·몰수능 같은 임시 난이도 논란이 없다. 문제 의 난이도가 아니라 답안의 수준이 관건인 평가구조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 수능문제는 “1912년 루스벨트의 대선 패배 원인을 분석하시오”, 독일의 영어 수능문제는 “학교폭력 증가 원인을 분석하는 신문 기사를 영어로 써보시오”, 요즘 국내 교육청들에서 한글화를 추진하고 있는 IB(국제 바칼로레아) 역사 수능문제는 “동학혁명은 일본의 조선 병합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에 대해 얼마나 동의하는가?”이다. 우리 교육은 절대평가·상대평가든, 수능·내신이든, 유상·무상이든,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지 못한다.
드라마에도 국가 교육정책에도 ‘교육’이 없다. 이어령 고슈는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를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고 했따.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은 검색을 넘어 사색과 탐색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한다. 사교육에서 집어넣는 교육의 정답 찾기를 각개전투하는 것이 아니라 ‘공교육에서 생각하는 힘을 함께 꺼내는 교육’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국가 교육정책은 핵심은 안 고치고 둘레만 땜질하고 있따. 이미 시대가 마차가 아닌 자동차로 옮겨가고 있을 때 좀 더 나은 마차를 만들려는 노력이 무슨 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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