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진출 부인하는 카카오·넥슨
정지성 금융부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아닙니다.”
10여 년 전 모 연예인이 음주 운전으로 적발된 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최근 카카오·넥슨 등 국내 대형 IT기업들의 가상화폐 시장 진출 관련 코멘트를 보면 이 발언이 떠오른다. 카카오가 투자한 핀테크업체 두나무가 국내 최대 가상화폐거래소 ‘업비트’를 다음달 중 오픈한다고 지난 25일 공식 발표했다. 시장에선 카카오가 투자사를 통해 가상화폐 시장에 간접 진출했다는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이며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카카오 측은 두나무가 카카오의 ‘투자사’ ‘ 관계사’ 등으로 표현되자 부담스러워하며 각 언론사에 이를 ‘제휴사’로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넥슨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지난 26일 넥슨의 지주회사 엔엑스씨가 국내 3대 가상화폐 거래소 중 하나인 코빗(Kobit)을 인수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넥슨은 가상화폐 분야에 진출하는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회사에 투자하거나 아예 인수했지만 가상화폐 시장 진출은 결코 아니다”는 말이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아니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리는 이유는 뭘까?
카카오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자. 카카오는 두나무 지분 9.49%(약 33억4000만원어치)를 보유한 주요 주주다. 이는 이른바 ‘가상화폐 테마주’로 묶여 주가가 급등한 에이티넘파트너스나 우리기술투자의 두나무 지분율보다 훨씬 높다. 여기에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설립한 케이큐브벤쳐스의 공개되지 않은 지분까지 합치면 보유 지분율은 더 올라간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회사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카카오와 넥슨이 가상화폐 시장 진출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최근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해 “가상화폐는 ‘화폐·금융상품’이 아니다”며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금융당국과 현 정부에 대한 ‘눈치보기’로 풀이된다. 특히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뱅크를 설립하면서 은행법 개정 등 규제 완화를 위해 금융당국과 정부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가상화폐 열풍은 ‘현재판 바다이야기’가 아닌 글로벌 트렌드에 따른 자연스런 흐름이다. 가상화폐 시장에 진출하는 IT기업들이 떳떳해질 수 있도록 정부 당국과 업계의 낡은 의식을 버릴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