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병사 부친과 구본무 회장, ‘배려가 배려를 부르는 사회’ : 매일경제 사설 (2017년 10월 19일 목요일)

철원병사 부친과 구본무 회장, ‘배려가 배려를 부르는 사회’

 

사설

 

지난 9월 사격장 근처를 지나다 총탄에 맞아 숨진 철원 육군 6사단 이 모 상병의 사망 원인이 당초 군당국이 추정한 도피탄(튕겨져 나온 총알)이 아니라 유탄으로 최종 밝혀진 것은 충격적이었다. 군 당국의 안일한 대응에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 상병의 아비지는 의연했다. 그는 “빗나간 탄환을 어느 병사가 쐈는지 알고 싶지 않다. 그 병사가 밝혀지더라도 나에게 알려주지 말라”고 했다. 군대에 간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겠지만 총을 쏜 병사의 자책감과 부담감을 헤아린 아버지의 차분한 행동은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이런 이 상병의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사재 1억원을 전달한 소식 역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구 회장은 “병사 아버지의 깊은 배려심과 의로운 마음을 우리 사회가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는데 곱씹어 볼 메시지다. LG그룹은 2015년 의인상을 제정하고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해양경찰, 군인, 소방관, 굴삭기 기사 등 숨은 의인들을 찾아내 상금을 전달해 왔다. 의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에 보답하는 일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특히 탄환을 쏜 병사를 추적하지 말라고 했던 이 병사 아버지의 배려에 구 회장이 배려심을 보인 것은 ‘배려가 배려를 부르는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사랑, 배려, 온정보다 탐욕, 복수, 응징, 이기심이 판치면서 갈수록 삭막해지고 있다. 조금도 손해 보려 하지 않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적대시하고, 뜻대로 안 되면 떼법 쓰기와 억지로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구 회장이 유가족에게 내민 따뜻한 손길은 각박한 사회가 변하게 하는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배려는 역지사지의 마음이다. 의로운 일을 한 이들이 존중받고 이런 분위기가 다시 의인을 만드는 선순환 사회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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