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 깨는 ‘애자일 조직’은 선택 아닌 생존 문제 : 매일경제 기고 (2019년 1월 2일 수요일)


위계 깨는 ‘애자일 조직’은 선택 아닌 생존 문제

기고

장은지
이머징리더십인터벤션즈 대표

지난달 초, SK그룹이 주요 계열사 임원인사를 단행하면서 민첩한 조직문화를 표방하는 애자일(Agile) 조직 구축을 선언하며 큰 화재가 됐다. 애자일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정보기술(IT) 혁신기업들의 조직 운영 방식으로서, 국내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은행, 카드, 보험 등 금융권을 중심으로 애자일 조직 도입이 매우 빠르게 확산돼 왔다. 최근에는 제조업, 건설업에서도 애자일 조직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국내 기업에서 애자일은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애자일은 본래 2000년대 초, IT업계에서 대두된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의 하나로서, 고객의 요구에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최우선 목적으로 한다. 최근 주목받는 애자일은 이러한 관점을 기업의 조직 구조 및 운영 방식으로 확대한 것이다. 애자일 조직의 확산은 지금까지의 피라미드형 위계 조직이 앞으로 경영환경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는 한계 인식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피라미드형 위계 조직에서는 아래에서 정보를 수집해 상향식으로 단계적 의사결정을 거친 후 최고경영진에서 의사결정이 내려지면 다시 아래로 내려와 실행이 이뤄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렇게 의사결정을 하다가는 도저히 지금처럼 빠르게 변모하는 시장과 고객에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애자일은 이러한 대규모 조직을 매우 작은 규모의 단위 조직으로 나누고 이들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고객과 시장의 변화에 시의적절한 의사결정 및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애자일이 한국 기업에 지금 특히 필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다음의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첫째, 대부분의 한국 기업이 아직도 과거의 패스트플로어 전략에 최적화된 조직 구조에서 변화하지 못한 채 정체돼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 비숙련 노동자를 대량 투입해 비용 우위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 대기업들은 규모의 성장을 얻어냈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규모의 우위는 더 이상 경쟁 우위가 될 수 없는 세상이다. 오히려 규모가 커질수록 조직은 관료화됐으며, 그를 내 지주사와 계열사로 이어지는 복잡한 거버넌스 속에서 의사결정은 더욱더 느려지고, 혁신은 요원해졌다. 이대로는 우리 기업들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둘째, 불필요한 관리자 계층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의 문제다.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양적 생산성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기에, 이제 질적 생산성 향상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조직생산성을 진단해보면, 대부분 비효율은 관리 단계에서의 계층별 보고 및 업무지시에서 비롯된다. 애자일 조직에서는 달라진다. 핵심 경영진을 제외한 중간관리자 계층이 사라지게 되고, 모두가 동일한 위치에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불필요한 관리의 옥상옥이 최소화되고, 모두가 실무자이자 의사결정자로서 고객 가치 창출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고부가 가치 활동에 전념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밀레니얼 세대의 업무 몰입 저하 및 이탈을 가져오는 조직문화의 문제다. 신입사원의 퇴사율이 기업마다 평균 30%에 육박하고 워라벨을 외치는 이면에는, 그들이 몰입할 수 없는 과거형 조직 구조의 문제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밀레니얼들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자신의 성장과 기여도를 바로바로 확인하고자 하는 특징이 있다. 중간관리자가 되어도 의사결정 권한이 거의 없는 지금의 조직에서 그들은 주도적 성장의 경험을 찾기 쉽지 않다. 혁신은 뛰어난 밀레니얼 인재들을 확보하고, 이들의 비선형적 사고와 시도로부터 생겨난다. 이러한 결과는 주인의식을 요구한다고 찾아오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이 주인이 되도록 허용하는 조직구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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