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2017년 2월 25일로 기억합니다. <김제동의 톡투유-걱정말아요 그대> 방청을 하러 갔던 날입니다. 김제동을 보러 갔었는데, 다른 것의 진짜를 보고 왔던 날입니다. 바로 정재찬 교수 입니다. 그 동안 방송에 나와 몇몇 시들을 소개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하지만, 그저 프로그램의 한 코너 정도로 생각했기에 흘려보고 흘려들었습니다.

2017년 겨울 다시 그 날, ‘시’라는 것을 온전히 재대로 받아들이고 소름이 끼친 날로 기억됩니다. 시를 제대로 느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감을 잡은 날이기도 합니다. 시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시가 없다는 것도 충격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그나마 몇몇 시는 외우고, 가슴에 담아두곤 했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날 이후 정재찬이라는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책을 두 권 샀습니다. 읽었습니다. 다시 시를 기억하고 싶어졌습니다. 시집을 몇권 샀습니다. 필사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시들시들해지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다시 책으로 찾아온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저 | 인플루엔셜 | 2020년 02월 25일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생의 무게 앞에 내 삶이 초라해질 때 그때야 말로 시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모든 것들 즉,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 등을 시와 함께 소개합니다. 시 속의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들쳐보며 삶의 지혜를 찾아냅니다. 일곱 가지 주제를 가지고 총 14변의 시 강의를 통해 그 지혜에 닿는 순간까지를 가이드하고 있습니다. 그저 이끌기만 할 뿐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시는 유리창과도 같습니다. 닫힌 문으로는 볼 수 없던 바깥의 풍경들을 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리창은 소통의 통로이자 단절의 벽이기도 합니다.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서 바람의 숨결을 직접 느끼는 것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시인들과 저의 한결 같은 바람이랍니다.7쪽

정재찬 교수의 현대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다음 학기에 똑같은 내용을 가르친다고 해도 청강을 하고 싶을 정도라고 말합니다. 적당한 시기에 마음을 울리는 시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자신만의 고민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낭만도 찾고, 인생의 풍요도 찾는 것 입니다. 감성을 찾는 것은 덤입니다.

이런 느낌은 학생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을 살만큼 산 사람들도 시를 통해 현재의 내 모습을 더 잘 표현하는 단어와 문장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시 전체의 맥락이 지닌 분위기에 취할 수도 있습니다. 잊고 지낸 소중한 것을 소환한다고 합니다. 이런 한 문장 한문장이 분명 소름을 끼칠 정도이며 깊은 감동을 하게 만들 것입니다. 똑같은 내용을 가르친다고 해도 청강을 하고 싶다는 학생처럼, 저 또한 읽었던 글 또 읽고 새로나온 책 또 사서 보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매번 똑같은 내용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교사가 되길 꿈꾸는 제자들에게 제가 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육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신념이 뭔지 아느냐고.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이다. 그걸 믿지 못하면서 사람을 가르치려드는 것은 위선이거나 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동시에 교육자가 꼭 갖고 있어야 할 지혜가 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교육은 훈육이 되기 일쑤다. 잘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변하게 만들어야 하기에 교육은 힘들고 위대한 것이다.78쪽

책에 플래그를 붙이고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많이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짧은 문장하나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자가 직접 말하듯이 이야기하는 내용은 직접 읽고 글에 따라 감정을 이입해봐야 감동이 배가 되어 몰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머리의 회전도 빨라지지만 가슴은 더 많이 뛰게 될 것입니다.

침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얘기 좀 해”라고 말하기 전까지 보내는 침묵의 시간이 자기의 주장을 더 강화할 논리를 준비하는 시간이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태를 돌아보는 침묵과 인내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대화를 시작할 때는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시비를 덮은 자리에서 오로지 화해를 위한 이야기만 준비해가지고 나와야 하는 겁니다.218쪽

강의를 듣는 기분이 들도 쉽게 편하게 썼다고 합니다. 기존에 출간된 책보다는 두껍지만 읽히는 것은 더 쉽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읽기만 해놓고 생각은 천천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시라는 것이 오래오래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처음에 꺼낸  “인생의 무게 앞에 내 삶이 초라해질 때, 그때야 말로 시가 필요한 순간이다.”를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지만, 한참 뒤에 머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올라오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쉰은 자칫 오만하기 쉽습니다. 그럴 만한 실력과 경륜이 쌓일 때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세상은 부단히 변하고, 몸은 쉬지 않고 무너져내려 간다는 사실을 잊고 지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어느 날부턴가 슬슬 오만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하고, 올드한 사람 취급도 받으며,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다보니, 언성만 높아져서 더욱 오만하고 올드해 보이는 악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꼰대는 오만과 올드의 합성어입니다.111쪽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시는 다른 모습을 하고 나타납니다. 똑같은 내용을 가르친다고 해도 왜 또 듣고 싶은지 알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에 대한 느낌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 책속에 담긴 유머코드를 통해 유쾌할 것만 같은 사람, 책이 늘어갈 수록 책 띠지의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도 찾을 수 있는 사람, 바로 정재찬 교수입니다. 그 사람의 제대로 된 시 강의를 같이 들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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