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천천히 읽어야만 책값하는 책

 

평소에는 별것 같지 않은 글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짧은 글이 오래오래 머리속에 맴돌 때가 있습니다. 여운을 주기도 합니다. 그 여운이 마음속 큰 울림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우리의 감정은 다양합니다. 그 상황을 공감해주는 듯한 이야기를 듣거나 읽거나 발견했을 때 위로를 받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김치 시즈닝으로 아마존서 시즈닝 판매 1위를 차지한 푸드컬쳐랩 안태양 대표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것을 봤습니다. 힘들었을 때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순간이었습니다.

“20대 지나면서 잘나가는 친구들 보면서 대게 속상했거든요.”

그 말을 듣고 유재석씨가 한 말이 방송을 보고 난 후에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같이 출발한 친구들이 사실 어느 정도까지는 서로 연락도 하고 위로도해주고 응원도 해주는데 어느 순간 나는 그대로인데 저 친구들은 계속 올라가는 게 느껴지면 사실 그 친구가 안 되길 바라는 게 아니라, 제 스스로가 너무너무 싫고 밉고…”

인생이란 일단 부딪쳐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부딪쳐 본 선배들이 전하는 말과 글, 그리고 그림은 숨어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무언가에 부딪쳐 힘든 사람이 있을 때 슬그머니 나타나 마음을 울컥하게 합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매커시 저 / 이진경 역 | 상상의힘 | 2020년 04월 15일 | 원제 : Boy, The Mole, The Fox and The Horse

 

책값 만팔천원, 쪽수도 표시안되어 있습니다. 불친절합니다. 정보를 확인하니 128쪽 입니다. 한쪽당 140원꼴입니다. 한페이지에 글자수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림책이다 보니 그림값인가 하기는 합니다. 표지가 양장이라 고급스러운 것 말고는 솔직히 돈 아깝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순간순간 짧은 글과 그 글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하는 그림이 마음을 오래오래 두게 만듭니다.

책의 장르가 정확하게는 그래픽 노블이라고 합니다. 일러스터인 찰리 맥커시가 우화의 형식을 빌어 불확실한 시대에 건네는 위안과 희망, 사랑과 우정을 담고 있습니다. 책의 시작은 ‘용기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된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용서하기 가장 힘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야”

소년은 두더지를 만납니다. 두더지는 먹는 것에 집착합니다. 거친 들판 속에 여우를 만납니다. 여우는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강한 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친절한 본심이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말을 만납니다. 말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동물로 그려집니다. 소년과 두더지, 여우, 말과의 대화 속에서 우리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야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어.” 소년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래.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도 뒤돌아 봐.” 말이 말했습니다.

유재석씨가 한 말과 겹치는 부분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책을 펼쳤습니다. 아마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이 부분에서 머물렀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마음 한 구석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슷한 뭔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만드는 글을 확인했습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에서도 본 글과도 겹칩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켜요.
잘생긴 나무는 먼저 배여 목재로 쓰입니다.
진짜 고수는 뛰어난 체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읽을 수록 책값을 제대로 뽑을 수 있습니다. 결코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책 한권을 온전히 읽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도 이 책은 수백번 더 읽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번이라도 마음 울컥한 뭔가를 느낀다면 분명 손 닫는 가까운 곳에 두고 계속 읽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의 여백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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