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수출家長’ 반도체 : 매일경제 기자24시 (2019년 1월 4일 금요일)

고달픈 ‘수출家長’ 반도체

기자24시

임성현
경제부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지난해 미국 월드시리즈 선발투수로 나섰던 류현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마자 2년 연속 14승을 따내며 정상급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도 괴물 투수였다. 2006년 데뷔 첫해 18승을 거두며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을 정도다. 그런 그가 2012년 한국에서의 마지막 시즌엔 고작 9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방어율 2.66이라는 성적에도 말이다. 물방망이 타선과 허약한 중간계투진 때문에 1승을 하는 것도 버거웠다. ‘소년가장’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이 최초로 6000억달러를 돌파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7개국만이 달성한 금자탑이다. ‘수출 가장(家長)’ 반도체 덕분이다. 하지만 추세를 보면 사정이 다르다. 지난 연말 수출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원흉은 다시 반도체다. 11월 106억달러였던 수축액이 12월 88억달러로 미끄러졌다. 지난해 최고치였던 124억달러(9월)에 비하면 30% 넘게 추락한 것이다. 설상가상 올해 대내외 수출환경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도 막을 내렸다는 게 중론이다.
수출 한국의 또 다른 이름은 반도체 강국이다. 1993년부터 반도체 산업은 유례없는 호황기를 누렸다. 그 덕에 한국 수출도 1995년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2002년부터 또다시 찾아온 반도체 축제. 2004년 수출이 가뿐히 2000억달러를 넘어섰던 원동력이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반도체 비중은 20%에 달한다. 이러다 보니 잘나가는 수출엔 언제나 반도체 착시론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단대로 반도체가 고꾸라지면 수출 역시 맥없이 무너졌다. 1996년 D램 가격 폭락이 부른 반도체 부진은 결국 IMF 위기로 이어졌다. 2차 호황 때도 마찬가지다. 2007년 반도체 불황이 덮쳤고 결말은 금융위기였다.
20년 넘게 홀로 수출 가장’을 떠맡아온 반도체가 또다시 휘청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뛰어난 공격력으로 집을 덜어주던 자동차, 스마트폰 등도 나가 떨어져버렸다. 고군분투하던 반도체도 이젠 힘에 부쳐 보인다. 반도체 호황이 끝나면 어김없이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취약한 산업구조를 극복하겠다는 정부의 구호는 여전히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20년 넘게 변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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